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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은 선한 삶을 위해서 있습니다.

    [아침편지1829]2018.6.4

    양심은 선한 삶을 위해서 있습니다.

    샬롬! 즐겁고 행복한 한 주간이 되시길 빕니다. 산책하다 보면,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리시버로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소리가 밖으로 나오게 해서 듣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다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 따라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마지막 부분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맏아들이 법정에서 호소하는 고백입니다. “나는 검사가 지적한 대로 ‘부족하고 죄 많은 과거’를 살았습니다. 어떤 처벌을 받아도 감수할 겁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여러분이나 판사가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판결을 내린다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절망입니다”라고 절규했습니다. 신앙적 고백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진실이 사라지고 거짓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이 세상은 어찌 되겠습니까? 이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고 양심의 문제입니다. 양심의 존재가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선한 삶을 위해서 있습니다. 선한 삶은, 인간 모두가 찾아서 지켜야 하는, 정신적인 규범입니다. 그 엄연한 사실을 스스로 포기한다면, 우리는 금수보다도 못한,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출처: D닷컴, 김형석)

    양심(良心)이 없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양심이 살아 있어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욕심이 양심을 마비시킬 경우,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물맷돌) 퍼옴

    [나는 네 행위를 알고 있다. 사람들은 네가 살아 있다고 하나, 사실은 죽은 자와 다름없다(계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