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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주일아침에(34) -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샬롬! 은혜로운 주일이 되시길 빕니다. 어린시절, 흙이나 모래를 갖고 놀면서 부르던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 게 새집 다오!”라는 전래동요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새집을 지어줄 정도의 지능과 능력을 가진 두꺼비라면, 이 노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것 같지 않습니다.

    6․25동란 직후인 29일, 맥아더 사령관은 직접 전선(戰線)을 시찰하기로 하고 한강전선이 보이는 신길동 근처에서 전황을 관측했습니다. 이때, 최전방 벙커를 지키고 있는 어느 한국병사를 우연히 만나 이렇게 물었습니다. 맥아더 : 전세가 이렇게 밀리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도망가지 않소? 병사 : 후퇴하라는 명령이 없었습니다. 맥아더 : 그렇다면, 너는 이곳을 얼마 동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병사 : 상관이 철수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습니다. 맥아더 : 지금 내가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을 하나 말하라. 들어주겠다. 병사 : 충분한 실탄과 총을 지원해주십시오. 맥아더는 이 병사와 대화를 하고 나서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켜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다졌다고 합니다.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증언하자,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회개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의 용서함을 받으라.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자(聖子) 예수님은 ‘말씀이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신 분’이고, 그 ‘말씀이 각 사람들에게 영(靈)으로 임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를 마음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과 인간이 영적으로 하나가 되는 역사(役事)’, 곧 ‘성령체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풀어쓴 사도행전05]http://cafe.daum.net/moolmatdoll/Hyn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