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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주일아침에(42) -
나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샬롬! 아침 5시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인 듯싶습니다. 은혜로운 주일이 되시기 바랍니다. 개그맨 오지헌 씨가 말하길 ‘밑 빠진 독에다 아무리 물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독 자체를 호수에다 던지면 된다.’고 했습니다. 요컨대,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고, 주께 온전히 맡겨야 가능하다는 겁니다.

    신앙을 갖게 되면 ‘번뜩이는 감각이나 냉철한 비판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하고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입니다. 내 작은 머리에서 나온 언어와 판단이 더 큰 영성에 의지한다면, 지성이나 두뇌 순발력이 더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지성을 넘어서는 거니까, ‘지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넘어선다.’는 말입니다. 영성을 얻기 위해서 지성을 버려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성은 깨달음으로 가는 사다리입니다. 예수님이 왜 육체로 왔습니까? 육체로 왔다는 것은, 육(肉)이 지닌 욕망, 잘난척하는 지성, 변덕스러운 감정, 이기적이 본능을 다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와 똑같은 육의 조건 속에서도,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100%신자는 될 수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밤에 자다가도 불현 듯 의심과 참회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나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신자와 비신자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출처;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

    [나는 참으로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육체’에서 구원해내겠습니까?(롬7:24)]

    [풀어쓴 사도행전13]http://cafe.daum.net/moolmatdoll/Hyn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