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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아침에(49) -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희망

    주일아침에(49)-
자연의 순리와 인간의 희망

    샬롬! 은혜로운 주일이 되시길 빕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대부분의 종교가 개인적인 수련을 통해서 ‘신(神)의 경지’에 이르기를 추구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좀 더 높이 위로’ 올라가고자 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높은 보좌에 계시던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내려오셨습니다. 요컨대, 기독교인은 ‘날마다 더욱 낮아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었으면’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꿈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도 끊을 수 없거니와, 죽음이 없는 삶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오히려 인생은 더 많은 고통의 짐을 져야 합니다. 백 년 사는 것도 죽을 고생인데, 천 년을 살 수 있다고 할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할 겁니다. 삶의 경험과 지혜가 삶 자체를 거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다가오는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옛날 철학자들은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그 열매가 익어 떨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이, 인간도 성숙해지고 지혜를 갖추면, 그런 자연질서에 따르는 것이 순리(順理)’라고 봤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기대하지 못했던 한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구약약속을 지키면서 인류역사에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예수’가 나타난 겁니다. 그 생애는 짧았습니다. 사생활(私生活)30년을 제외하면, 공생애는 겨우 3년여에 불과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는 세 번 ‘자신의 죽음’을 예고(豫告)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임 당한지 3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대로 이루셨습니다.(출처;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주님은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 당했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막8:31)]
    [풀어쓴 사도행전20]http://cafe.daum.net/moolmatdoll/Hyn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