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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자식만 귀하고 소중한 게 아닙니다.

    [아침편지1718]2018.1.25

    자기자식만 귀하고 소중한 게 아닙니다.
 
    샬롬!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해, 겨울이 오기 전에 문풍지와 단열필름을 붙였더니, 그 효과를 단단히 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현관문 틈막이 한 게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창유리에 붙이는 단열필름도 보온효과가 큰 듯싶습니다.

    서울 친정집에서 아들을 낳은 손주며느리는, 바로 또 임신하는 바람에, 젖이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침 안동 고향집에, 딸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여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손자는, 할아버지께 ‘그녀를 유모로 데려가고 싶다’는 의향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증손자가 태어나자 ‘우리 집에 이보다 더한 경사는 없다’면서 기뻐하던 할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손자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몇 달 동안만 밥물로 키운다면, 이 아이도 키우고, 증손자도 구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떼어놓고 가는 그 어미의 마음은 오죽하겠느냐? 서울까지 가는 동안, 이 아이는 죽을 거고, 어미의 젖도 막히게 될 것이다. 내 자식을 키우려고 남의 자식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결국 그의 증손자는 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증손자의 죽음을 가슴 아파하던 할아버지 역시 몇 달 후 안타깝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내 자식을 위하여 남의 자식을 죽게 할 수 없다던 그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는 퇴계 ‘이황’입니다.(출처: 샘터, 최효찬)

    그 옛날, 종은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지만, 퇴계는 ‘자기 증손자를 살리고자 종의 자식이 죽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위대하다’지만, 이성(理性)을 상실한 엄마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퇴계의 ‘냉철한 이성(理性)’이야말로 ‘진정 위대하다’ 할 수 있을 겁니다.(물맷돌) 퍼옴

    [자식은,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이며, 상급으로 주신 그의 축복이다(시127:3)]